"KBS가 전국 만 19세의 성인남녀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85%가 우리사회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가장 심각한 갈등의 종류로는 ‘정치적 갈등’이 41.6%, 진보-보수간의 이념적 갈등이 26%, 계층간 갈등이 13.4%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10년 전에 비해 사회 갈등이 심각해 졌다는 의견이 무려 89%에 달했다. 이 결과는 다양한 분야, 계층에서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갈등이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KBS 심야토론 관련기사 중 -


"민주주의를 잘 하는 것이 소통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지,
소통에 대한 강조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 최장집 교수 기고문 중 -


얼마전 세미나 시간에 나왔던 이야기인 것으로 기억한다. 2년전만 하더라고 (지금 YCCG가 진행하고 있는 온라인 토론이라는 ) 똑같은 아이템을 들고 나가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다가, 지금은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고. 이래저래 '소통'이 화두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 방영된 KBS 심야토론에서 나왔던 이야기들 역시 이러한 최근 우리사회의 '소통의 발견'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들이었고, 해결책으로 (가설적이고 잠정적으로나마) 제시되었던 방안들 역시 그동안의 논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나서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합의가 필요하다, 언론과 국회를 비롯한 제도적 공론장의 기능 회복이 필요하다 등등. (또 다른 것들이 있었나? 피곤에 절어 집에 와서 발견(?) 한 아이템이라 많은 것이 기억나지는 않는다...역시 인간의 기억력은 믿을만한게 못된다니까. 한번 시험해보시라. 3일전 먹었던 저녁 메뉴는? 쉽지 않을걸.....아무튼 잡설은 생략하고..)

며칠전 고려대 최장집 명예교수가 경향신문에 특별기고문을 게제했다. 경향신문이 최근 기획하고 있는 "소통합시다" 기획에 대한 의견 및 답변 형식으로 쓴 글이다. 특별히 눈에 띄는 구절이 있어 과제의 형식을 빌어^^; 소개하고자 한다.

"사회의 의사형성이 언론과 지식인 엘리트들에 의해 선점되고 좁게 제한된 이데올로기 범위로 한정되는 조건에서, 공공여론이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를 이슈화시키기는 쉽지 않다. 소통의 문제가 이러한 맥락에서 제시될 때, 엘리트주의라는 특징과 그러한 의사형성과 여론이 사회현실로부터 크게 괴리되었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민주주의가 잘 발달된 나라 같으면, 여러 사회집단들, 특히 사회적 약자, 소외세력들의 의사를 정당하게 반영하고 조직함으로써 사회적 의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인 엘리트와 소수 언론매체들을 통해 형성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적인 의사형성이란 차이를 인정하고 이들 차이간의 합리적인 경쟁을 통해 일정한 합의를 넓혀가는 과정이라 할 때, 사전에 정해진 어떤 의사, 가치를 위에서부터 부과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원리와 부합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소통이라는 말을 쓰면서 발생하는 역설적인 현상은, 그것이 개인의 의사이든 집단의 의사이든 의견 및 의사의 소통을 더 자유롭게 하고 그 범위를 넓히기보다 이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이데올로기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소통은 공익, 정의, 도덕적이라는 말과 같이 좋은 말이다. 그러나 좋은 말은 캠페인 같은 방식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조건이 성숙되는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실현되는 현상이다. 민주정치에서 소통은 투표에서 다수의 평결을 통해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소통하도록 강제되는 조건의 함수로 이해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잘하는 것이 소통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자, 소통에 대한 강조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최장집 교수가 그의 저서 및 여러 기고문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기본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및 한국 정치 나아가 현 시국에 대한 평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자세하게 논한 바 있지만, 사회적 균열에 뿌리내리고 있는 '대표적/책임적 정당체계' 없이 사회적 소통과 민주주의는 요원하다는 것. (구조적 대안 없이) 현상에 대한 반대되는 상, 특히 어떠한 도덕적 이상에 기초한 성격의 것을 가지고는 실제 달성하려고 하는 대안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들 중의 하나는 87년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 나타나는 정당체계의 극심한 혼란과 본격적인 미디어-정치 및 미디어권력화 현상의 진전이다. 최소강령주의에 의해 기존의 엘리트 지배계층과 야당으로 대표되는 marginal elite들간의 협약에 의해 이행된 정치체계의 변화, 노동-민중운동세력과 야당 및 도시중산층이라는 역사적 블록의 형성으로 대표되는 한국 민주주의 이행의 불안정성, 정치체계의 변화 이후에도 지속되는 보수독점의 정당체계 자체의 기본적 성격의 연속성, 군부세력의 퇴진으로 생겨난 권력의 공백기 전면에 나타난 미디어의 자기-권력화 현상, 사회체계의 이념적 대립을 재생산하는 언론-정당의 병행구조, 공론장의 수행성을 어렵게 하는 언론의 신뢰도 위기 및 저널리즘 철학과 현실의 불일치 등등..

최장집 교수가 그의 기고문에서 적절하게 지적했던 바와 같이 과거 이른바 진보정부들 역시 경제와 사회정책에서 신자유주의 성장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했고 그 결과 서민 및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은 지속적으로 약화되었다. 국가의 사법 경찰기구들은 충분히 민주화되지 못했었고(농민시위 진압 사망사건 및 무리한 검찰수사의 문제 등은 놀랍게도 지난 정부들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들이었다. 다만 이러한 사건들이 일반 중산층이 대상이 아닌 도시 빈민과 농민 및 노동자층의 문제였기 때문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 뿐) 소통이 잘 안되었던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근본적인 태도' 및 '도덕적 가치'에 입각한 현실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아무리 유용하고 또 필요한 것이라고 해도 사태에 대한 해결방안이나 현실의 문제점을 개선하는게 이바지하는 것 보다, 오히려 이러한 비판을 통한 논란과 다른 비판의 연쇄를 초래함으로서(-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공영방송에 대한 논란이다. 어느정도까지가 공영방송의 수행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 생각해볼 일이다.) 다른 논란이 증폭되고 사태의 해결이 어렵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가 소통이 잘 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소통이 잘 되면 사회가 민주적으로 발전한다고 보장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최근 우리사회의 가치대립과 사회적 논란의 증폭은 앞으로의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둘러싼 가치투쟁의 성격과, 지난 10년, 나아가 한국의 근현대사의 역사 인식을 둘러싼 담론투쟁의 성격, 그리고 사회경제적 계층과 이와 연관된 물질적/경제적 조건을 규제하는 사회적 세력관계의 반영이라는 측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역사적 순간'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장집 교수의 글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과연 한국사회는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인가?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역사의 진보는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진보인지 아니면 역사의 반동인지는 사후적으로만 확증될 뿐이다. 중요한 것은 당대의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사회적 합의와 동의의 산출이며,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적인 합의와 소통이 더욱 중요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합의와 소통은, 최장집교수의 지적대로 어떤 켐페인적 성격을 통해 일시에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노력과 사회적 구조적 조건들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며, 이러한 조건들의 성격 및 작동원리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만이 바람직한 사회적 합의를 (역시 조건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모름직이 사회에 기여하는, 소통에 기여하는 언론의 역할은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적 조건들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경향신문의 기획력에는 박수를, 앞으로의 노력에는 응원을 보낸다. 소통에 대한 진지한 접근만으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아울러 우리 YCCG의 노력이 더 나은 소통과, 나아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작은 도움이 될 것이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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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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