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CCL 칼럼

만약, 박재범이 그렇게 떠나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2. 14. 16:30

 안녕하세요, 아삼입니다. 오늘은 오랫만에 재미있는 주제로 생각을 해 볼 기회가 주어졌네요. 저번 세미나 시간에 우리 블로그가 왜 서로 댓글이 잘 안달릴까에 대한 이유를 이야기하다가, 우리의 히어로 seziar 군이 이런 이야기를 했지요. "잘 안읽힌다. 재미가 없다" 그래서 제가 또 소심한 마음을 붙잡고 제 글을 한 번 쭉 봤습니다. 그러니까 여실히 느껴지는 seziar 군의 마음. 정말 제가 봐도 재미가 없더라고요. 저런ㅋㅋㅋ.

 하지만! 오늘은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조금은 재미있으리라 생각해보면서 글을 써볼까 합니다. 짧은 글이 될 테이니 쉽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지만 원체 재미있게 글을 쓰는 편은 아니라, 조금 걱정은 됩니다.

 '2PM 재범 사태'는 올해 사이버커뮤니케이션 수업이 열렸더라면 너도 나도 연구해보겠다는 팀들이 넘쳐났을 정도로 우리로서는 흥미로운 주제였지요(하지만 다들 아시듯 존경하는 우리 윤영철 교수님께서는 어여쁜 병아리 학생들을 위한 언론학 개론을 열강중이시죠. 아, 1학년들 참 재미있겠습니다). 이미 여기저기 학자들이나 혹은 눈밝은 네티즌들에 의해 분석되고 있듯이 '상처받기 싫은 방어적이고 왜곡된 애국심의 공격적 표출'이나 '섣부르고 자극적인 언론보도로 인한 해당글의 사실관계에 대한 무시' 등 몇 가지 핵심적 키워드로 읽어낼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건 당시 이런 원인 차원의 요소들이 아닌 다른 부분에 눈이 갔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은 다름아닌, 사건에 대한 '대응' 이었습니다.


박재범이 나흘만에 시애틀행 티켓을 끊은 까닭은

  9월 5일 토요일에 최초로 동아닷컴에 '2PM 재범, 한국비하발언' 이라는 기사가 뜨고난 뒤 4일 후인 9월 8일 화요일에 박재범은 시애틀행 비행기에 오르게 됩니다. 기사업로드에서 출국행 비행기 탑승까지 나흘이라니, 아무리 논란에 휩싸여 뜨겁게 달아오른 사건이라도 이렇게 빠르게 한국을 떠나게 되니 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던 저는 참 어리둥절했습니다. '아니, 공식 사과 기자회견도 없이 팬클럽 홈페이지에 글 하나 올리고 바로 출국을 해?'. 한국 대중가요계를 이끌고 있다는 평을 듣는 박진영 사장의 판단이었을테지만 왠지 지나치게 다급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셨는지요?



 출국 이후에는 다들 아시듯이 여론의 방향이 조금, 아니 많이 틀어져서 '양키고홈'에서 '너무했다'라는 쪽으로 바뀌게 되죠. 역시 이번에도 언론들은 -여기서는 주로 '인터넷 매체들은'이라고 해석하시는 게 맞겠습니다만- '너무했다'라는 내용의 보도를 어마어마하게 쏟아냅니다. 프레임 분석을 통해 9월 5일부터 8일까지의 기사 내용들을 분석한다면 아주 재밌는 극단화 경향이 보일 것 같네요. 이후에는 박진영 사장의 입장 발표와 팬들의 보이콧 선언 등 대립각이 세워지고 지금도 그 대치 상황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2PM 팬들 내부에서 향후 단체행동의 방향에 대한 약간의 갈등이 있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박재범의 출국 이후에 일어난 여론의 방향 전환과 팬들의 적극적 행동-보이콧을 포함한-들을 보며 몇 가지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의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첫째, '왜 보다 적극적인 사과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가'에 대한 것이지요. 이것은 저같은, 2PM의 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롭고 신선한 컨셉으로 등장해 선풍적 인기를 끌고있는 그들을 내심 흐뭇하게 봐라봤던 잠재적 팬(?)의 입장에서도 참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왜 박재범은 TV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던 무릎을 꿇던 한 때의 잘못을 사과하지 않았을까요. 왜 현재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영향력 1위라는 박진영 사장은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지시하지 않은 채 그에게 다만 시애틀행 티켓 한장 만을 끊어줬을까요. '박재범 자살 청원'같은 일부의 엇나간 위협들이 무서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인터넷 문화와 네티즌들의 행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박진영 사장 같은 엔터테인먼트계의 리더라면 당시와 같은 매서운 비난의 화살이 한국의 대중 모두의 뜻은 아니며, 따라서 지금의 비난의 열기가 그렇게 오래토록 지속될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건 언젠가는 꺼져버릴 불길이라는..어라.. 잠깐..응?

 저는 어쩌면 이 것 때문에 일단 그를 시애틀로 보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과없는 출국과 사과없는 침묵, 누가 그들을 이토록 '현명'하게 만들었는가

 몇 일전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는 <표절, 위험한 줄타기>라는 주제로 빅뱅, 2NE1이 소속된 양현석 사장의 YG엔터테인먼트와 관련한 표절 논란을 다뤘습니다. 다들 아시듯 표절이 의심되는 지드래곤(G-dragon)의 '하트브레이커(Heartbreaker)'와 '버터플라이(Butterfly)'와 2NE1의 '아이돈케어(I don't care)'를 포함한 총 4곡에 대해 원곡 저작권자인 소니ATV 뮤직퍼플리싱에서 YG엔터테인먼트 측에 경고장을 발송한 상태였지요. 이 사실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고 합니다. 경고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곡을 여전히 가요프로그램이나 음원시장에서 절찬리에 홍보 및 판매중이라는 사실은 상식적인 선에서도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왜 양현석 사장과 YG엔터테인먼트는 사과를 하지 않을까요. 경고장을 받은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은 건 회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태도겠지만, 그들은 해당 곡들로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오래된 페르시아 왕의 고사에서 교훈을 얻었을까요. 페르시아 왕의 반지 안쪽에 새겨져있던 그 글귀.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 말입니다.


 그들을 이렇게 '현명'하게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런 격노의 불길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저 멋있고 예쁜 아이돌이 귀에 착착 감기는 노래들을 틀어주면 다른 것들은 금새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과거에도 한국 사회의 언론-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류를 언론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아직 분류를 명확히 해낼 수 있는 용어가 정립이 안된 것 같은 생각에 불쾌하면서 그저 사용합니다-과 인터넷 공간을 점령한 수많은 네티즌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분노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그 격노가 분명 함부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한국에 입국하지 못하고 있는 가수 유승준의 병역관련 사건의 경우 이번 박재범 사건에도 그 어두운 아우라를 드리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죠. 많은 이들이 이번 박재범 사건을 '상처받기 싫은 방어적이고 왜곡된 애국심의 공격적 표출'이나 '섣부르고 자극적인 언론보도로 인한 사실관계에 대한 무시' 등으로 해석하고 있고 이것은 분명히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과거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의 경우에서도 판단하기 쉽지 않은 매우 세밀한 부분에서의 오역논란이 결국 PD수첩에게 사과방송까지 하게 만들었죠. 지상파 방송에서조차 날을 항상 날카롭게 벼리기가 쉽지 않았을 부분을 인터넷 매체들이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는 여전히 회의적입니다. 다만 '언론'이라는 이름을 달 수 있는, 글과 말로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들이 엄격한 자기검열을 하지 못한다면 그 매체들은 스스로 수명을 멈춰야하겠죠. 박재범 사건에 대해 처음에 그렇게나 치우진 보도를 일삼던 매체들이 뒤늦게 '뉘앙스가 다르다'던지 '너무했다'라는 보도를 내보내는 것을 보면 쓴 웃음만 나옵니다. 지금 그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나 있을까요? 그리고 그런 언론 속에서 숨가쁘게 놀아나며 댓글을 달던 우리의 네티즌들은 지금, '양키고홈'이 아닌 '돌아와'를 키보드로 신나게 치고 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광장을 메우던 공공의 분노(public anger), 어디로 갔는가

 대중의 격노가 그리 오래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사그라든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저 너머 높은 곳에 잘 살고들 있습니다. 영화 '공공의 적2(감독 : 강우석, 주연 : 설경구, 정준호, 2005)에서 영화배우 정준호 씨가 분한 재벌 2세 한상우는 이런 대사를 하지요. "니들은 세금 몇 푼 깎아주고 월드컵만 보여주면 돼. 니들은 니들끼리 살란말이야, 버러지 같은 인생끼리". 월드컵 4강에 절대 다수의 시민들이 열광하는 사이에 높은 곳에 계시는 분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한 걸음들을 하셨을 수 있지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정치사회학자 샤츠슈나이더(Doris Schattschneider)는 엘리트들이 한 사회의 지배적 사회 갈등을 교묘히 배제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행보에 유리한 갈등만을 선택적으로 동원하는 형태를 '갈등의 사유화(privatization of conflict)'로 개념화 했습니다. 새로운 총리 지명과 인사청문회 기사로 그득한 신문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을 해 봅니다. 촛불시위가 끝난지도 이제 햇수로 두 해, 그 광장의 분노는 어디로 갔을까요. 미국산 소고기는 잘만 팔리고 있다는데데 검역 절차는 꼼꼼히 잘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70%가 넘는 국민들이 반대했던 대운하개발은 '4대강사업'이라는 오색찬란한 비단옷을 갈아입고 새단장을 마쳤습니다. 이제 온 국토의 강들이 새단장을 할 차례가 되겠지요. 미디어법에 대해 끝없이 토론하던 그들은 어디로 갔는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어 보입니다. 

 박재범이 떠나기 전에 머리숙여 사과하고 눈물을 흘렸더라면 우리는 이번 주말에도 '니가 밉다'를 부르던 그들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수십만 팬들이 가득한 YG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들을 이끌고 90년대의 우상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아이들1 역 양현석 사장이 당당하고 쿨하게 머리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과한 욕심일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절 그 광장을 메우던 공공의 분노는 어디로 갔을까요. 다들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고들 계신지, 위에 계신 분들은 한 때 격렬했던 그 분노의 원인들과 잘 싸우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혹시 그들도 역시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진 않겠죠? 그 말은 군대에서나 필요한 말입니다.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


(사진 출처 : 한겨레 www.hani.co.kr)